AI 모델, 패션 산업의 새로운 얼굴인가?기술 혁신 속 윤리적 논쟁 부상인공지능(AI)이 패션 산업의 중심 무대로 올라서고 있다. 전통적인 휴먼 모델 대신 AI로 생성된 디지털 휴먼이 잡지 화보, 온라인 쇼핑몰, 심지어 런웨이까지 장식하고 있다. 기술이 주도하는 이 변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AI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는 있지만 이와 함께 AI로 인해 파생되는 윤리적 논쟁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AI 모델은 패션 산업의 미래인가, 아니면 통제되지 않은 실험인가. 기술이 연 디지털 패션의 세계AI 모델의 등장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패션 산업 전반의 ‘시스템 재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예는 글로벌 브랜드 H&M이 최근 선보인 ‘디지털 트윈’ 프로젝트다. 이들은 실제 인간 모델의 이미지와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휴먼을 생성, 온라인 캠페인에 전면 배치하며 기존 마케팅 공식을 뒤흔들었다. 국내 브랜드들도 이 흐름에 동참 중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표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가 그런 경우다. 로지는 2020년 8월부터 인스타그램을 시작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다가 12월 30일 이를 공개했을 때 팔로워들은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진짜 사람인줄 알았다’ ‘가상 인물이라니 눈치채지 못했다’ 등 다양한 댓글이 올라왔다. 로지는 버추얼 매니지먼트 기업 에스팀과 연예 기획사 싸이더스가 만들어낸 버추얼 모델로, 가장 인기가 높다. 신한라이프와 모델 계약을 맺고 함께 촬영한 광고 영상은 유튜브에서 1천만 뷰를 기록하며, 인기를 가늠케 했다. 트렁크 아메리칸투어리스트, 태국 홍보대사도 했다. 현재 인스타 팔로워는 17만명을 넘었다. 최근에는 코치 팝업 행사도 다녀왔고,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도 관람했다. LG전자는 가상 인물 ‘김래아’를 만들었고, LF몰은 ‘나온’을 만들었다. 이들은 사람처럼 출생지도 있고, MBTI도 있다.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만 다를 뿐이다. 비용 절감과 글로벌 마케팅의 혁신AI 모델은 마케팅 효율성에서도 압도적인 강점을 보인다. 다양한 체형, 인종, 연령, 스타일을 손쉽게 생성할 수 있어 글로벌 타깃 마케팅이 더욱 정교해졌다. 동일한 제품이라도 아시아, 유럽, 북미 시장별로 각기 다른 인종과 분위기를 지닌 AI 모델을 활용해 캠페인을 벌일 수 있다. 이는 특히 이커머스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 관계자는 “AI 모델을 통해 하루 수백 개의 룩북이 실시간으로 생산된다”며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솔루션”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한 국내 플랫폼은 AI 모델 기반 ‘가상 피팅룸’ 기능을 도입해 20~30대 여성 고객의 구매 전환율을 17% 이상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AI는 단순히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을 넘어, 고객 경험을 혁신하는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리스크 제로, 활용도 최고가상 인플루언서들의 모델 활용도는 최고다. 언제 어디서나 출연이 가능하고, 활용도 가능하다. 아파서 스케줄을 펑크내거나 학폭, 음주, 폭행 등 사고를 칠 일도 전혀 없다. 애인을 만들어 팬들을 손절하게 할 일도 없다. 이들은 잠도 안자고, 밥도 안먹는다. 시공간의 제약도 없어 언제 어디서나 출연이 가능하다. 아이돌 에스파는 실제 인물 4명, 가상 멤버 4명으로 구성된다. 행사를 뛰더라도, 실제 멤버와 가상 멤버를 교차로 구성해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공연이 가능하다. 직접 가상 인물을 개발했다면, 한 번의 창조로 추후 별도의 광고 모델 비용도 들어가지 않는다. 실제 연예인을 모델로 쓴다면, 아직도 몇 억원의 돈이 들어가는데, 가상 인플루언서의 인기만 보장된다면 실제 연예인보다 훨씬 효율이 높다. 가상 멤버로만 구성된 아이돌도 인기다. 카카오엔터와 넷마블이 합작해서 만든 4인조 가상 아이돌 ‘메이브’의 경우 뮤직비디오 조회 수 2500만건, 스트리밍 4100만회를 돌파하는 등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다른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는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비주얼을 가졌다. 작년에 나온 앨범은 출시 일주일 만에 판매량 20만장을 넘겼다. SM엔터테인트도 조만간 가상 아이돌을 선보일 계획이다. 윤리적 논쟁 - 기술의 그림자AI 모델의 확산 이면에는 간과할 수 없는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가장 큰 논란은 ‘무단 학습’이다. AI 모델 대부분은 방대한 이미지 데이터셋을 바탕으로 훈련되며, 이 과정에서 동의 없이 수집된 일반인 혹은 유명인의 얼굴이 포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바 ‘딥페이크’나 ‘AI 성형 모델’ 문제와 유사한 맥락이다. 이에 따라 초상권 및 저작권 침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대해 ‘명확한 원본 표시’ 및 ‘동의 기반 학습’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은 2025년 하반기부터 ‘AI 생성물 투명성 규제안’을 시행할 예정이며, 한국에서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가이드라인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또, AI 모델의 활용이 전통 모델 산업에 미치는 파장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신인 모델의 데뷔 기회가 대폭 축소되었고, 모델 에이전시 및 스타일리스트, 촬영 스태프 등 전반적인 고용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모델 출신의 김소연 씨는 “AI 모델이 화보와 광고를 차지하면서 실제 모델에게 돌아오던 기회가 절반 이상 줄었다”며 “창의성과 감성을 요구하는 산업이 점점 ‘효율’만을 좇고 있다”고 비판했다. 규제와 공존의 해법어디까지가 협업이고, 어디서부터가 대체인가 AI 모델의 책임 있는 사용을 위한 법·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뉴욕주에서 통과된 ‘Fashion Workers Act’는 모델,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토그래퍼 등 프리랜서 패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 첫 입법 사례다. 이 법안은 AI 모델 활용 시 실존 인물과의 경계 명시, 공정 계약, 창작물 보상 기준 등을 포함한다. 국내 패션협회 관계자는 “AI 모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하나의 ‘콘텐츠 생산자’로 인식돼야 하며, 기존 인력과의 공존을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AI 모델 개발 기업들도 ‘윤리 가이드라인’을 자율적으로 설정하고, 데이터 수집 단계부터 동의와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인간 모델과 AI 모델이 협업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미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즉, AI 모델은 반복적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이미지 제작에 특화되고, 인간 모델은 고급 브랜드 이미지, 런웨이, 감정적 몰입을 유도하는 광고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AI 모델은 패션 산업에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선 기술의 속도를 윤리와 제도가 따라잡아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기보다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때, 패션은 진정한 의미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패션은 단순히 입는 것을 넘어, 존재를 표현하는 문화다. 그 문화가 기술로 인해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변화의 시대에 업계가 고민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