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마케터의 첫 프로젝트
최근에 좋은 제안을 받아 국내 조명 브랜드의 마케팅 디렉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브랜딩에 힘써줬으면 한다는 의뢰와 함께 프리랜서의 신분답게 일주일에 2번 출근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계약 조건, 업무 형태, 새로운 아이템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상황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색다른 것은 바로 마케팅 비용이었다. 내가 관리했던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서 예산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관리하고 있는 브랜드는 올해로 딱 설립 30년이 된 전통이 긴 회사이다. 전통이 긴 만큼 오프라인 중심의 세일즈가 대부분이었고, 조명 업계 특성상 제조업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나 도전보다는 기존의 업무 방식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말해 안전 지향적인 곳이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케터의 직감보다는 철저하게 데이터로 접근해야 한다. 고지식한 의뢰인을 설득하기에 히스토리와 숫자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유일한 무기는 이 회사의 데이터였고, 무기를 찾기 위해 입사 첫날, 데이터를 요청하여 과거 성과를 분석을 시작했다.
분석에 활용한 데이터
브랜딩과 생존 사이
분석 결과, 시장성, 수익성, 차별화, 지속가능성 등 모두 우수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오프라인 위주의 세일즈, B2B에 의존한 영업 방식으로 인해 B2C를 위한 마케팅 활동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는데, 더욱 아이러니한 건 퍼포먼스 마케터, MD, 웹디자이너, CS 등 온라인에 배치된 인원만 4명이 넘었다. 다시 말해 인건비도 안 나오는 수준이었다.
이때 나는 많은 갈등과 고민이 들었다. 내가 부여받은 업무는 브랜딩인데, 브랜딩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브랜딩이라는 것은 대개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긴 호흡의 활동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성과가 나타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브랜딩에 집중할 때에는 수익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에 많은 리스크가 동반된다.
그래서 나는 브랜딩이라는 체면을 잠시 벗어 두고, 생존에 사활을 걸기로 결심했다. 제품이 아무리 예쁘면, 감각적이면 무엇하랴? 고객이 존재조차 모르는데.
신규 채널 진입과 락인 효과
마케팅 예산이 넉넉하다면 집행할 수 있는 광고 채널은 셀수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월 200만 원이 전부이다. 200만 원으로 성과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회사에는 이익을, 개인적으로는 평판을 지켜야 한다.
기존 담당자는 네이버 쇼핑 광고, 스폰서드 광고 위주로 채널을 구성했다. ROAS는 평균적으로 400% 정도인데, 사실 이커머스 산업 치고는 매출 볼륨이 낮은 편에 속하는 수준이다. (물론, ROAS로만 보면 안정적인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기존에 집행하고 있는 채널 외 효율 채널을 발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을 빌렸다. 여기어때, 망원동 티라미수에 재직했을 당시 내가 담당했던 채널 중 효율이 높았던 채널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니 Display Ad였다. (이하 DA) 통상적으로 이커머스라면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보여지는 DA가 잘 맞는다. DA 중에서도 가장 많은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채널을 선정했고 담당자 미팅을 시작으로 동반되는 모든 과정을 빠르게 정리했다.
또한, 약 6,800개 이상의 채널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에 고객 트래픽도 그동안은 다른 수준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재 고객을 유효 고객으로 락인(Lock In) 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한 끝에 찾은 답은 바로 신규 가입 혜택이다. 나도 어떤 서비스에 가입하는 이유는 그 브랜드가 좋아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 와 같은 드라마틱한 이유보다는 신규 가입자 혜택이 있을 때 가입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잠재 고객에서 유효 고객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신규 가입자 혜택을 기획하기 위해 운영 담당자와 미팅을 진행하였는데, 아이러니한 건 이미 신규 가입자 혜택이 빵빵하게 구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신규 가입자 혜택
위와 같이 이미 신규 가입자를 위한 혜택이 어느 정도 구성되어 있었지만 이 혜택을 고객에게 알려줄 수 있는 창구가 아예 없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광고 소재, 상세 페이지, 공지사항 등에 가입자 혜택에 대해 안내하였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가입 전환율이 개선되고 있다.
분석은 데이터 기반으로, 결정은 감으로
전략을 기획할 때에는 데이터 분석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마케터의 감이 중요하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채널을 선정할 것인지, 광고 소재는 어떤 느낌으로 제작할 것인지, 카피와 문구는 어떻게 기획할 것인지는 데이터가 아닌 마케터의 선택 즉, 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슈 작가가 쓴 <일을 잘한다는 것>이라는 책에서도 자신만의 감각으로 탁월한 성과를 올리는 방법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실력은 거기서 거기이다. 그 이후부터는 마케터의 센스가 필요하다. 마케터에게 많은 경험을 요구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분야에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아 본인만의 감을 쌓아보기를 바란다.
잘 갖춰진 것보다, 미완성된 브랜드를 완성시켜 나가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현재는 ‘도리몬’ 이라는 일잘러 랜선사수로 활동하며 마케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前. 망원동 티라미수 / 콩카페 코리아 브랜드 마케팅 리더
前. 야놀자 / 여기어때 마케팅 인큐베이팅